“해방 (liberarion)”이란 어떤 구속이나 억압 같은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제 이차 세계대전의 악당 국가들 중 마지막으로 일본이 항복한 8월 15일이 우리나라가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날이다.
1945년 만큼은 아니지만 1968년 8월 15일도 나름 “해방”과 관련이 있다. 이 날 미국 뉴욕 주의 우드스탁 지역에서 음악 축제가 시작되었다. “우드스탁”이라고 알려진 이 축제는 8월 18일까지 계속되었다. 이 축제는 그 당시의 젊은이들이 기성 질서로부터 해방을 선언한 이벤트이며 또한 전후 사회가 모더니즘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변환하는 것을 보여준 중요한 상징이었다.
처참한 전쟁을 겪은 세대, 자기의 목숨을 걸고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기성 세대는 이기적이고 골치아픈 젊은이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기성 세대가 보기에 지극히 무질서하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아이들을 보고, 사회는 이 이상한 세대를 비난하고 개탄하였고 또 그들이 맡을 미래를 한탄했다.
그 당시 기성 세대가 한심하게 생각했던 세대, 히피 (hippie)로 상징되던 이 신세대가 지금 세상에서 70대 이상의 노인 세대이다. 우드스탁 세대는 결코 그들의 윗 세대가 걱정했던 것처럼 무책임하거나 무능력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이가 들자, 머리를 짧게 자르고 청바지 대신 양복을 입었으며, 폭스바겐 비틀 대신 캐딜락을 타고 싶어했다. 적어도 그들은 기성 세대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1969년 8월 15일, 소낙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울려 퍼진 “해방”의; 목소리는 헛되지 않았다. 우드스탁 세대는 권위적이고 집단 중심적이던 사회로부터 개인의 독창성을 지키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우드스탁 세대가 중심이 된 사회는 그 이후 더욱 다양하게 변했으며, 더 많은 공동체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도 “해방” “자유” “개성”을 부르짖던 우드스탁의 정신은 영원할 것이다.
우드스탁 세대는 어떻게 되었나
우드스탁 세대는 어떻게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