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용병의 처절한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1792년 8월 10일에 일어난 튀일리 궁전 (Tuileries Palace) 사건이다. 이 사건은 프랑스혁명의 와중에서 벌어졌다. 국외로 몰래 탈출하려던 루이 16세 일가가 국경에서 잡혀서 파리로 돌아와서는 튀일리 궁정에 머물렀다. 하지만 국왕일가의 배신에 흥분한 군중들이 튀일리 궁전으로 몰려와 순식간에 궁정 주변은 전쟁터가 되었다. 그 때 군중들에게 밀리던 프랑스 수비대는 대부분 도망가 버리고 궁전에는 스위스 용병들 뿐이었다. 무기와 흉기로 무장한 군중들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도망가지 않고 맞서 싸웠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수 백 명의 용병들이 죽었고 훨씬 많은 숫자가 다쳤다. 그렇다면 아무리 돈이 좋아도 용병들이 왜 항복을 하거나 도망치지 않았을까? 그 것은 바로 평판 때문이다. 만약 스위스 용병들이 약하다는 소문이 나면 앞으로 어느 나라도 스위스 용병을 고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일자리도 문제이지만 스위스의 젊은이들은 이제 해외 일자리가 없어질 판이었다. 그래서 용병들은 남의 나라 문제에 얽혀 끝까지 죽기 살기로 싸우다 대규모로 희생되었다.
지금도 스위스의 루체른에 가면 이 때 희생된 스위스 청년들을 기리는 조각이 있다. 이른바 “죽어가는 사자의 상 (Lion of Lucerne)”이다. 조각 속 사자는 지금 죽어간다. 모든 동물의 왕이지만 마지막 숨을 힘들게 쉬는 사자의 모습은 불쌍하다. 관광객들은 사자상 앞에서 즐겁게 사진을 찍지만 그 조각상 앞에 서보니 문득 서독에 광부로 일하러 간 우리 앞 세대를 생각했다. 빈번히 갱내 사고로 죽고 다치고 억울하게 당해도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아무 소리 못하고 참아야 했겠지. 1963년부터 1979년까지 서독 광부들도 31 분쯤 사고나 자살로 사망했고 서독 간호사들도 14 분쯤 자살했다고 한다. 튀일리 궁전에서, 그리고 서독의 탄광에서 희생된 사람들에게 가난하고 힘없는 본국이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스위스 용병의 비극이 사뭇 무겁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