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9월 12일 “그동안 은인자중하던” 튀르키예 군부는 마침내 “구악을 일소하고 국민과 나라를 도탄으로 부터 구하기 위해” 일어났다. 이 날의 군부 쿠데타로 무능하던 민간 정부는 무너지고 군부가 집권하게 되었다.
이런 군부 쿠데타는 개도국에서 흔한 것이지만 튀르키예의 군부는 다른 나라와는 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2.26사건이나 우리나라의 5.16 군사 혁명을 보듯이 보통 군부는 가난하고 보수적인 시골 정서를 대표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튀르키예의 군부는 보수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터키의 이슬람 주의에 맞서 싸우는 세속주의의 앞장을 서는 세력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민간 정부를 대신한 튀르키예 군부는 어쨌든 집권 기간 중 경제 위기로부터 튀르키예를 구했다. 군부 집권 직전에 100% 이상 되던 인플레는 그 후 곧 진정되었고, 군부 집권 기간 동안 튀르키예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튀르키예의 군부 쿠데타는 일본의 2.26 사태보다는 1980년에 일어난 한국 신군부의 쿠데타와 비슷하다.
게다가 튀르키예 군사 쿠데타의 결말도 한국과 비슷하다. 1980년 쿠데타를 이끌었던 케난 에브렌은 그 후 군복을 벗고 민정에 참여하여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나중에 민간 정부에 권력을 이양했으나 2000년에 민간 정부로부터 반역죄로 기소되었다.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실제로 복역하지는 않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사망했다.
1980년 군부 쿠데타는 수 많은 튀르키예인들을 희생시켰다. 쿠데타에 반항하던 수천 명이 투옥되고 수백 명이 사망했다. 군부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가차없이 “처단”했다. 그런 면에서 튀르키예의 군부 쿠데타 주역들이 자행한 숙청은 1980년대 인권 탄압의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Turkey’s 1980 coup lingers in memories on 41st anniversary)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 이슬람의 기치를 높이 들고 무자비한 탄압을 가하는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정권을 보면, 튀르키예 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나라를 극단적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지킨 것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 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튀르키예의 군부에 의해 죽은 청년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에 의해 “처형”된, 그리고 지금도 처형되고 있는 많은 청년들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죽었든 결국 죽음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