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너 행렬의 최후를 떠올리며 보는 한국 대선

Donner Party Memorial
다너 위령비

대선을 앞둔 지금의 한국은 엉망진창이다. 주요 정당의 후보자들은 저마다 지키지도 않을, 그리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하면서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선거라는 것이, 또 정당 제도라는 것은 원래 정당의 후보자들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후보자가 아예 드러내고 “김대중 정책이든 박정희 정책이든” 다 한다는 표퓰리즘적 발언을 하는 선거는, 이제 이 나라에서 정당 정치의 의미라는 것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니 좌충우돌하는 지도자가 그 전체 집단에 미치는 비극적 영향에 대한 사건이 떠오른다. 그것은 바로 1847년 미국의 “다너 행렬 (Donna Party)의 비극” 이다. 이 때는 서부 개척 시대라서 동부나 중서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던 시기였다. 다너 행렬은 중서부의 일리노이주에서 출발해서 캘리포니아로 가는 이주민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은 어른과 아이를 포함해 모두 89명이었다. 행렬이 7월에 중부 와이오밍에 도착할 때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와이오밍에서 행렬의 지도자로 새로 뽑힌 조지 다너 (George Donner )가 문제였다. 그는 이미 잘 알려진 코스보다 지름길이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행렬을 “헤이스팅스 지름길 ( Hastings Cutoff)”라는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그는 무능한데다가 고집이 센 인물이었다.

이 잘못된 코스 변경으로 길을 잃고 헤매게 된 다너 행렬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 근처, 지금의 레이크 타호 지역에서 그만 모진 겨울을 맞게 되었다. 폭설로 더 이상 갈 수가 없게 되자 집단에는 굶주림이 덮쳤다. 일부 건강한 사람들은 눈길을 뚫고 멀리 있는 미군 요새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했지만, 대부분은 눈 속에 갇혀 기아로 죽어갔다. 심지어 굶주림에 지친 나머지 돌아 버린 사람들은 나중에는 사람 고기를 먹으면서 버텨야 했다.

군 요새에서 이 사실을 알고 1월 30일  구조대를 보내서, 1857년 2월 19일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결국 다너 행렬의 89명 중 45명 만이 살아 남았다.

1847년에 일어난 다너 행렬의 비극은 멍청하고 고집센 지도자가 잘못된 길로 이끌 때, 전체 조직이 어떻게 파국을 맞는 지를 보여주었다. 이번 선거에서 한국의 유권자들이 만약 무능하고 비윤리적이기까지 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는다면, 이 나라는 과연 앞으로 몰아닥칠 여러 위기들을 이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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