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은 현대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사건들이 넘쳐 나던 한 해였다. 미국에서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 씨가 암살당했다. 프랑스에서는 6.8 혁명이 일어났다. 베트남에서는 테트 공세로 사이공 시내에서 미국 대사관이 미리 잠입해 있던 북베트남 병력에 의해 공격받았다.
한반도에서도 엄청난 사건이 여러 번 터졌다. 1월 달에는 이른바 1.21 사태가 일어났다. 이 때 북한이 파견한 특수 부대가 수도 서울까지 침투해서 청와대 주변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이런 혼란스러운 와중에서 1월 23일, 미 해군의 정찰함 푸에블로호 (USS Pueblo)가 동해 공해 상에서 북한군에게 나포되어 83명의 승무원들이 억류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푸에블로호 사건이 발생한 것은 1.21 사태가 일어나고 불과 2일 만이다. 푸에블로호 사건이 터지고 7일 후에는 베트남에서 구정 공세 (테트 공세)라고 부르는 공산군의 총공세가 시작되었다.
이 상황에서 아시아에서 연일 터지는 사건들로 미국의 존슨 정권은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해 상에서 작전 중이던 미 해군 함정이 나포되고 승무원들이 억류되었는 데도, 존슨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저 시간을 끌었다. 만약 지금 이란이나 북한이 이런 짓을 했다가는 아마 전쟁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윽고 미국과 북한은 협상을 시작했는데, 북한은 미국 정부의 공식 서면 사과를 요구했다. 뜻밖에도 미국 정부는 “영해 침범”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한다는 치욕스러운 문서에 서명하고 말았다. 게다가 그 문서를 보니 “관용을 베풀어 달라” ” 간절히 요청한다” “전적인 책임을 진다”와 같이 국제 외교사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굴한 표현이 버젓이 들어가 있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또 다시 충격을 주었다.
존슨 정권이 이렇게 비굴하게 용서를 “구걸”해서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은 1968년 12월 23일, 억류 11개월 만에 겨우 석방되었지만, 푸에블로호는 지금도 북한이 억류 중이다. 북한은 이 배를 육지로 끌고 와서 평양에 있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옆에 전시하면서, 미국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존슨 정권은 이 바보 같은 대처 태도 때문에 두고 두고 웃음거리가 되었다. 한편 안보를 미국에 의지해서 살던 시대에 이런 한심한 꼴을 보고, 박정희 정권의 핵심 인물들이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짐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70년대가 되어 대통령직 삼선에 성공한 박정희 씨는 이 때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자주국방”을 뼈에 새겨, 중화학 공업과 방위 산업 육성에 전력을 다하게 되었다. 그의 대담한 선택은, 비록 초기에는 이룰수 없는 꿈처럼 보였지만, 2000년 대 이후에 한국이 무기 수출면에서 세계적인 공급국이 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반면에 미국 대통령 존슨 씨는 베트남전에서도 온갖 멍청한 짓을 계속하여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받은 엄청난 비난과 공격을 받아 구석에 몰렸다. 사면초가의 상태가 된 존슨씨는 현직 대통령이 재선 출마를 포기한다는 충격적인 선택을 했고 그 후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