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고 음악이 세계를 휩쓸던 1970년대 초반, 미국 그룹 레이더스 (Raiders)의 노래 “인디언 보호 구역 (Indian Reservation)“은 전 세계의 고고장에서 흔히 울려 퍼지던 신나는 노래였다. 70년대의 서울에서도 청년들은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울리는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었지만 정작 그 노래의 가사를 아는 사람들은 적었다.
그 노래의 가사 중 일부는 이렇다.
그들은 체로키 땅 전체를 빼앗았다. (They took the whole Cherokee nation)
그리고 우릴 여기 보호 구역에 가두었다 (Put us on this reservation)
우리가 사는 방식을 빼앗고 (Took away our ways of life)
도끼와 활과 칼을 빼앗고 (The tomahawk and the bow and knife)
우리 고유의 말도 빼앗고 (Took away our native tongue)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And taught their English to our young)
우리가 손으로 만들던 구슬 장식들은 (And all the beads we made by hand)
이제는 일본에서 만들어온다 (Are nowadays made in Japan)
여기에서 “그들”은 백인 들이다. 이 노래에 따르면 백인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넓은 땅에서 미국 원주민들을 쫓아내서 좁은 “인디언 보호 구역”에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미국 원주민들이 또 전쟁을 일으킬 까봐 아예 모든 무기를 압수하고 더 이상 사냥을 하지 못하게 했다.
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서 미국 원주민들의 고유한 언어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점차 잊혀지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과거에는 원주민들이 직접 만들어 사용하던 구슬 장식들이 이제는 멀리 일본에서 대량으로 제조 되어 수입되기 때문에 전통 공예의 기반이 무너진다는 주장이다.
이런 것을 보면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다루는 방법은 호주나 미국이나 비슷한 것 같다. 원주민들이 언어, 전통, 풍습 이런 것들을 못하게 하여 사실상 정체성을 잃어버리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제 원주민들은 더 이상 전쟁을 할 필요도 없고 힘들게 사냥할 필요도 없다. 안전이 보장된 보호 구역 안에서 백인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팔거나 그마저도 귀찮으면 그저 정부의 보조금만 받아도, 먹고 사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원주민 남자들 사이에는 알코올 중독 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되었다. 할 일이 딱히 없으니 남자들이 매일 같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을 마시게 된 것이다.
이 노래는 그런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청춘의 사랑과 정열을 노래하는 70년대 고고 음악 중에서 이 노래는 매우 뚜렷한 사회적 성향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가 손으로 만들던 구슬 장식들은 이제는 일본에서 만들어온다” 라고 말한 부분은 우리의 관심을 끈다.
이 부분은 1970년대 초만 해도 일본이 구슬 장식을 손으로 일일이 만드는 이런 노동 집약적인 산업으로 외화를 벌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보호 구역에서 파는 원주민 전통의 구슬 장식조차 일본에서 만들어 수입하는 것이 훨씬 쌌기 때문에 미국의 보호 구역에서는 아무도 직접 만들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일본은 이 시기가 지나자 곧 카메라나 자동차와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으로 경제 체제를 바꾼다. 그 뒤를 대만, 그리고 한국이 이어받아 청계천과 구로에서 많은 여공들이 불을 밝혀가며 수출용 제품에 바느질을 하였다. 그 다음에는 중국이 이런 산업을 한국에서 이어받았고, 지금은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이런 산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노래가 나왔을 때에는 무작정 도쿄로 상경한 일본의 시골 아가씨들이 어두운 공장에 빽빽이 앉아 졸린 눈을 부비며 바느질을 하던 시기였다. 이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 문득 오늘날 부자가 된 한국과 일본을 만들기 위해 희생을 강요당한 많은 젊은 여성들의 옛날이야기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