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플로이드 (George Floyd)의 죽음으로 들판의 불길처럼 번져가던 “흑인들의 생명도 귀하다 (BLM,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한 때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는 듯했다. 이 운동은 처음에는 남북전쟁 당시의 남군과 관련 있는 인물들에 대한 공격이었으나 미국의 역사적 인물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역사 재평가 운동으로 까지 번져갔다.
그 결과 우드로 윌슨 (Woodrow Wilson) 전 대통령이나 서부극의 명배우 존 웨인 (John Wayne)이 재평가 대상이 되어서, 프린스턴 대학의 “우드로 윌슨 센터”와 오렌지카운티의 “존 웨인 공항”의 이름을 바꾸라는 주장이 높았다. 이에 대해 이제라도 미국 사회가 백인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을 가지려고 하는 것을 환영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이러한 움직임의 방향성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다.
한 편, 따지고 보면 과거의 인물들의 평가에 있어서 인종 차별적 안목을 가졌던 것만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동안 미국 사회에는 여성이나 장애인, 외국인, 동성 연애자, 소수 종교의 신자 등 많은 소수 그룹들에 대한 제도적인 억압과 그러한 억압을 직접 수행하거나 지지한 수많은 인물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인종 문제만이 대두되었지만 앞으로 이런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인물 검증이 철저히 이루어진다면 아마 미국은 과거의 역사에서 영웅은커녕 그저 괜찮은 인물조차 찾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우리는 이런 광풍을 이미 60년 전에 중국의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보았다. 현대의 엄격한 잣대를 댄다면 아마 예수나 공자조차 흥분한 대중의 혹독한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그동안 예술 쪽에서만 머물러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일 지도 모른다. 혼란과 무질서, 파괴와 해체를 정상으로 보는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이 이제 본격적으로 사회의 중심 이론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혼란의 바탕 위에 전개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의 끝은 무엇일까?
그런데 2025년이 되자 기세등등했던 BLM운동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종적이 묘연하다. 들불처럼 번지던 기세는 사라지고 이제는 오히려 사회 전반에서 백인 중심의 보수화 현상이 뚜렷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사회의 중심 사상이라고 외치던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미국도 우리나라처럼 사회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빠르게 바뀌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