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갑자기 서거했다. 여왕의 갑작스런 죽음은 비단 왕당파들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여왕의 죽음은 진정한 의미로 20세기의 끝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미 21세기가 시작된 지가 22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20세기의 연장선에 있는 착각을 하며 살아 가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지난 20세기가 상징했던, 아니 상징하려고 했던 질서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어떤 변고와 사건이 터져도 여왕은 항상 침착하게 대처했다. 여왕은 격변을 거듭하던 20세기에도 자기의 중심을 잃지 않고 늘 한결같았던 대표적 인물이었다. 비슷한 인물로 교황이 있었지만, 의외로 교황은 자주 바뀌었다. 그러고 보면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사람들도 어느 틈에 우리 곁을 떠나가 버렸다.
언제나 밤의 토크쇼를 통해 볼 수 있었던 자니 카슨, CNN의 토크쇼 진행자 래리 킹, 늙었지만 불사신 같던 프랭크 시나트라, 세기의 미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모두 떠났다. 우리나라에서도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그리고 건강의 상징이라 100세는 문제없을 것 같던 민관식 씨나 이어령 선생도 떠났다.
그래도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이제 여왕도 우리 곁을 떠났다. 여왕의 죽음이 왠지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쩐지 “질서”로 상징되던 20세기가 진짜 우리와 작별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군주가 군주 같고, 가수가 가수 같고, 배우가 배우 같고, 선생이 선생 같았던 20세기는 이제 정말 가버리는 모양이다. 21세기에는 군주가 배우 같고, 가수가 선생같고, 선생이 가수 같은 엉망진창의 시대가 되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에는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여선생이, 직장 상사가, 그리고 학생이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성추행하고 괴롭히고 횡령을 하는 그야말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10세 친손녀 4년간 성폭행한 할아버지…변호인도 “할말 없다”) 어쩐지 여왕이,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세상의 질서가 벌써 그리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