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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파업과 1981년 미국 관제사 파업

1981 air traffic controller strike
1981 air traffic controller strike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돌입한 지 벌써 5일이 지났다. 이로 인해 전국에서 화물 운송에 지장이 발생하며 점차 산업계 전반에 피해가 일어나고 있으나, 빠른 시일 안에 해결될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번 사태는 1981년 미국에서 일어났던 항공 관제사 파업을 떠오르게 한다. 그 때 미국에서는 지미 카터의 민주당 정권이 대선에서 공화당의 레이건 후보에게 패배하여 새로 레이건 정권이 들어섰다. 친노조적 성향이 뚜렷했던 카터 정권이 물러나자, 노조는 레이건 정권과 초기부터 기세 싸움을 벌였다. 그런 가운데 항공 관제사 노조가 처음으로 정부와의 대결을 선언했다.
항공 관제사 노조가 선두가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항공 물류를 책임지는 항공 관제사들이 파업에 돌입할 경우, 미국의 운송 흐름이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므로, 정부가 노조에 대해 강경책을 쓰기 어려웠다. 항공 관제사 노조는 노조원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단합아래 파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조언과는 달리, 레이건 정권은 노조의 파업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정부는 그 이전의 카터 정권과는 달리, 업무에 복귀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11,359명의 관제사들을 불법 노동행위를 이유로 대거 해고했다. 그리고 정부는 폭력적 투쟁을 감행하던 노조원들을 대거 연행했다. 레이건 정권은 해고된 관제사들을 영구히 업계에서 축출했고 부족한 관제사 인력은 미군에서 차출해서 메꾸었다. (Ronald Reagan fires 11,359 air-traffic controllers)
물론 진보 세력과 언론, 그리고 민주당은 레이건 정권의 행태를 맹렬히 비난하고 조롱했다. 처음 보기에 레이건 정권의 대처 방식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잘못된 방식처럼 보였다. 하지만 레이건 씨는 “엄정한 법집행”이란 원칙에서 조금도 후퇴하지 않았다. 이처럼 정부가 강경한 입장을 바꾸지 않자, 파업 초기만 해도 서슬이 시퍼렇던 관제사 노조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관제사 파업은 정부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상당 기간동안 미국에서 불법 파업은 시도되지 못했다.

화물연대파업과 1981년 미국 관제사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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