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8월 31일 영국의 웨일스 공작부인 다이애나 빈 (전 왕세자빈)이 프랑스 파리에서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공식적인 발표에 따르면, 다이애나 빈과 그녀의 애인 도디 알파예드가 탑승한 차량이 파파라치들을 따돌리기 위해 속력을 내다가 지하 차도의 기둥을 들이받았다고 한다. 그 때 다이애나 빈은 이미 찰스 황태자와 이혼했고, 이집트 출신의 영국 백화점 재벌가문의 아들 도디 알파예드와 결혼설이 있었다. 그녀의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죽음은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추모의 물결이 세계를 뒤흔들었다.
일부에서는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하는 데, 영국 왕실에서 꾸민 것이라는 주장이 꽤 설득력있게 제기되었다. 다이애나는 생전에 영국 왕실과 무척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 뿐만이 아니라 시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여왕도 그녀를 무척 싫어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음모론이 사실인지는 둘째 치고, 다이애나의 이혼 그리고 비극적 죽음은 영국 왕실에 큰 타격이 되었다. 1997년과 비교하면 지금 영국에서 왕실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줄었다.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본질적으로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하는 영국 왕실의 고집 때문일 것이다.
소탈하고 대중적이던 다이애나는 “민중의 왕비 (poeple’s queen)”라고 불렸을 만큼, 국민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녀는 격식이나 관습보다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녀에 열광했었다. 영국 왕실은 그녀의 높은 인기를 시샘하고 두려워했지만, 결코 스스로 변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이애나가 사라지자 영국 왕실은 그녀의 기억을 지우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비단 영국 왕실 뿐만이 아니라 어느 조직도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종교나 법률, 왕가처럼 전통과 규정에 얽매인 조직은 더욱 변화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에서 과거의 방식만 고집한다면 서서히 몰락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영국 왕실을 보면 어쩐지 한국의 정당이 떠오른다. 1960년대 이래 세상이 너무나 많이 변했지만, 한국의 정당은 1960년대의 방식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지금처럼 고루하고 분파적이며, 이중적인 그런 행태를 고치지 않는다면 이 나라 정당 정치의 미래가 없을 지도 모른다.
최강의 힘을 자랑하던 20세기 초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가와 20세기 후반 이란의 팔레비 왕가도 민심의 이반으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들이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했을 때, 이미 그들 발밑의 기반이 꺼지고 있던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는 선거 때만 반짝 개혁과 변화를 부르짖고 선거 후에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정당들의 나눠먹기 정치가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가 이처럼 후진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유권자들의 묻지마 투표 성향 탓이다. 하지만 한국의 유권자들이 지금과 같은 어리석은 투표 행태를 언제까지 계속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만약 이 땅의 정치에서 묻지마 투표가 점차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다이애나의 변화를 완강히 거부했던 영국 왕실도, 구태의연하기만 한 한국 정당도 모두 어느 날 갑작스럽게 허망한 최후를 맞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